어린이집, 웨딩홀까지 전업…수도권 요양원, 매년 100곳씩 생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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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 개봉역 근처에 있던 지하 1층, 지상 6층 규모 A웨딩홀은 작년 11월 요양병원으로 간판을 바꿨다. 원래 홀 2개와 피로연장에 총 1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예식장이었지만, 그 공간에 지금은 투석실, 재활치료실, 격리실 등이 빼곡히 들어섰다. 건물 외관은 그대로다. 건물 외벽 절반 가까이가 반짝이는 유리로 고급스럽게 둘러싸여 있고, 로비나 화장실 등에는 매끈한 대리석과 화려한 장식이 남아 있다. 경기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에 있던 한 웨딩홀도 비슷한 사례다. 2020년 문을 닫고, 지금은 안양에서 가장 큰 요양병원 중 하나로 바뀌어 있다.
전국 곳곳에 있던 웨딩홀, 어린이집, 소아과나 산부인과 등이 요양병원이나 노인요양시설(요양원)로 속속 바뀌는 중이다. 인구 구조가 달라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21년 통계청이 집계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전년 대비 인구 감소 현상이 나타났다. 결혼과 출산이 일제히 줄어든 여파다. 동시에 고령화는 심화되고 있다. 그 여파로 업종 전환이 곳곳에서 생기고 있는 것이다. 아예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등으로 기존 건물을 ‘용도변경’ 또는 ‘리모델링’할 수 있게 컨설팅을 해주는 업체도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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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의 경우 변화가 특히 확연하다. 26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작년 기준 서울·경기 요양병원은 총 437곳으로, 2016년과 비교해 5년 새 15% 늘었다. 어르신 돌봄이 주 목적인 요양원과 달리, 요양병원은 치료와 재활 등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이라 의사와 간호사가 상주하고 병실 등 각종 시설이 갖춰져야 해 설립 조건이 까다롭다. 요양원이 늘어나는 속도는 더 빠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경기에만 요양원이 1668곳으로 같은 기간 44% 늘었다. 2019년부터 최근까지 서울·경기에는 매년 요양원이 약 100곳씩 생기고 있다.
웨딩홀이 요양병원으로 인기인 이유는 건물 구조 때문이다. 실내가 탁 트여 있는 데다 층고가 높게 설계돼 있는 등 규모가 커서 각종 치료실이나 병실을 만들기가 상대적으로 쉽다고 한다. 서울 강북구에 있는 한 요양병원도 2019년까지만 해도 500석 규모 홀 2개가 있는 예식장이었다. 경기 파주 금촌동에서 약 10년간 운영되던 토마토 웨딩홀도 2018년 파주시티재활요양병원이 됐다.
어린이집은 제도적인 이점 덕에 요양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법적으로 요양원은 어린이집과 같은 범주인 ‘노유자시설’(노약자, 아동 등을 위한 시설)에 속해 용도변경 절차가 상대적으로 간단하다는 것이다. 인천 지역에서 18년간 어린이집 여러 곳을 운영했다는 최모(50)씨는 최근 어린이집 중 한 곳을 요양원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그는 “저출산으로 갈수록 아이들 모집이 어려워져서 업종을 바꾸기로 했다”고 했다. 서울에서 어린이집을 운영 중이라는 한모(46)씨도 “요양원을 하기 위해 자격증을 따려고 공부하고 있다”며 “정부나 지자체 지원도 더 많다고 들었다”고 했다.
고령화가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진행 중인 비수도권에서는 산부인과나 소아과 같은 병원이 요양병원으로 바뀐 경우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부산 다대동의 한 산부인과는 2019년 요양병원으로 용도변경을 했다. 1층을 제외한 2~5층을 전부 입원실로 바꾼 것이다. 경기도 하남에서도 한 건물에 있던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이 한 번에 요양병원으로 바뀐 사례도 있었다.
김희라 기자 heera29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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