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스펙트럼과 하이퍼월드' 책 표지. ©조미정

 

일러두기

  ‘자폐 스펙트럼과 하이퍼월드’ 책의 원문에서는 ‘자폐증적 경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일부 자폐인 모임의 당사자들은 ‘자폐적’ 표현을 비판하고 ‘자폐스러운’ 표현을 지지한다. 나는 자폐를 병리적 현상으로 보는 것에 반대하는 동시에 ‘자폐적’에 붙은 부정적인 의미를 긍정적으로 전유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자폐적’이라고 고쳐 쓴다.

‘자폐 스펙트럼과 하이퍼월드’의 저자인 이케가미 에이코 씨는 가상세계 ‘세컨드라이프’에서 다양한 자폐인들을 만나게 된다. 그가 만난 자폐인 중에서는 말을 많이 하는 당사자도 있고, 자신만이 인지할 수 있는 색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도 있었다. 그곳에서는 감각이 민감한 당사자가 많았는데, 이들은 자신의 뇌속 작용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하곤 했다.

민감한 감각을 가진 당사자들을 보면서, 저자는 자폐인은 무엇인가가 결여되어 있다는 통념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폐를 마음의 이슈보다는 신체적인 이슈로 바라보게 되었다.

저자는 자폐는 인간의 모든 경험, 즉 지각감각적 경험, 심적 경험, 사회적 경험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지각감각적 경험이 다른 두 가지의 경험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한다. 오죽하면 가장 유명한 자폐인 템플 그랜딘은 연구 자금 1,000달러가 있다면 감각 문제의 원인을 밝히고 싶다고 했을까.

예를 들어보자. 나는 가벼운 틱이 있다. 입으로 떠는 소리를 내면서 몸 전체를 부르르 떠는 행동을 매일 2-3회씩 한다. 틱으로 진단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틱을 하는 모습을 보면 다른 사람들이 한마디씩 거들곤 한다. “너 그러다 사회생활 못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내가 틱을 하는 이유가 있다. 나의 몸 한구석에 어떠한 ‘신호’가 잡히면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서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이다. 틱의 결과는 역시 몸의 감각으로 나타나는데, 잘 떨면 몸이 상쾌하고, 못 떨면 찝찝한 느낌이 온다. 틱은 내가 마냥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과 다른 나의 감각을 처리하기 위한 행동일 뿐이다.

그러나 가족들은 나의 틱을 ‘문제행동’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내가 틱을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너 그러면 앞으로 사회생활 어떻게 하니”, “평생 그러고 살 것이냐?”라는 말을 했다. 나는 틱을 할 때 상쾌한 감각을 느꼈는데, 가족들은 나에게 한소리를 하니 인지부조화가 올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지각감각적 경험은 나의 몸에 특별한 ‘신호’를 감지하고 틱을 하고 그 결과를 감각적 피드백으로 받는 것이다. 피드백에 따라 상쾌함과 찝찝함의 감각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나의 모습은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춰진다. 사람들은 나에게 부정적인 말을 하며 혼낸다. 나는 부정적인 사회적 경험을 한 것이다.

부정적인 사회적 경험은 심적으로 인지부조화(두 가지 이상의 생각에 직면했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 것)를 불러온다. 한쪽은 틱을 하니 몸이 시원해서 자꾸 하고 싶은데, 한쪽은 이러다 사회생활을 못할까봐 걱정이 되고 틱을 숨겨야 하는가 하는 고뇌가 밀려온다.

이렇듯 나의 ‘자폐적 경험’은 세 가지 경험 모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폐인의 지각감각적 경험과 심적 경험, 사회적 경험은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자폐인의 감각을 이해하지 못하면 나머지 경험도 이해할 수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나는 왜 나의 특별한 감각을 숨겨야만 하는가? 나의 감각도, 자폐인과 신경다양인의 감각도 신경전형인과 ‘다를’ 뿐이라는 것을 알아줄 순 없는 건가? 나의 틱이 ‘죄’라면, 그 틱을 불러온 나의 감각도 ‘죄’인가?

나의 감각은 전형인과 신경회로가 다소 다르기 때문에 생겨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남들이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고 더위와 추위를 느끼고 꾸벅꾸벅 조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러한 ‘자폐적 경험’을 숨겨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마찬가지로 나의 틱 행동은 ‘죄’가 아니라 일종의 감각적 현상이 아닐까?

신경다양성 운동이 필요한 이유도 그런 차원이다. 자폐인에게 씌워진 부정적인 편견과 낙인, 특히 사회성이 부족하고 타인의 마음을 읽지 못한다는 잘못된 인식은 비자폐인이 자폐인의 감각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자폐인의 경험과 심리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신경다양성 운동은 자폐인에 대한 부정적인 낙인을 제거하고, ‘자폐적 경험’을 신경회로의 다양성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는 자폐인의 장애가 자폐인과 비자폐인의 상호 몰이해에서 비롯된다는 이중공감문제(Double Empathy Problem)의 관점을 전제로 한다.

다음 칼럼에서는 이중공감문제를 저자가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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