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수로 이루어진 와아피아는 새로운 시대의 턱이 되었다. ©pixabay
 난수로 이루어진 와아피아는 새로운 시대의 턱이 되었다. ©pixabay

몇 주 전, 카페에 갈 일이 있었다. 카페에 가서 안내문에 적힌 와이파이 이름과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접속했다. 그러나 접속이 잘 되지 않았다.

안내문 앞에 서서 접속 정보를 확인하고, 돌아가서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틀리면 다시 안내문 앞에 가서 암호를 외우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 접속하길 반복했다. 결국 대략 다섯 번 만에 와이파이에 접속하는 데에 성공했다.

 필자가 와이파이에 접속하기 어려웠던 이유 중의 하나로, 와이파이 이름과 비밀번호가 너무 어렵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보통의 와이파이 이름은 ‘통신사 이름_무작위 문자열’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KT_GIGA_12AB’의 경우, 케이티 기가 와이파이를 사용하는 12AB 기기를 의미한다. 간혹 이름에 ‘5G’가 적힌 것도 볼 수 있는데, 주파수가 5GHz인 와이파이를 의미한다.

이러한 것은 일반적인 주파수보다 호환성과 사용거리는 짧지만 더 빠른 접속이 가능하다. 마지막 문자열은 임의의 문자열로 구성되어 있으며, 보통 설치 시 기본으로 지정되어 있는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와이파이 이름이 비교적 알기 쉽게 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비밀번호는 완전히 임의의 숫자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df2i3180xkalc@’ 등의 의미 없는 문자열을 사용한다. 이것도 공장에서 출고될 때 지정되어 있는 비밀번호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규칙이 거의 없어 비장애인조차 쉽게 외우기 어렵다.

 발달장애인, 특히 지적장애를 동반한 발달장애인이 이러한 와이파이 정보를 쉽게 외우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우선 와이파이 이름도 네트워크 지식이 있지 않는 이상 그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없으며, 비밀번호는 규칙이 없는 긴 난수에 가깝기 때문에 한 번에 외워서 접속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구조는 마치 턱과 같아서, 건물 출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턱이 휠체어 접근을 막듯, 네트워크 출입구의 ‘모바일 턱’이 발달장애인의 정보접근성을 저해하는 것이다.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 와이파이를 켜면, 비슷한 와이파이 이름이 한꺼번에 뜨는 것도 당사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원인이다. 보통 한 건물에서는 하나의 인터넷 회사 와이파이를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SK_WIFIGIGA1234’, ‘SK_WIFIGIGA5678’(이것은 SK의 기가와이파이이며, 다른 회사의 와이파이가 더 많다면 다른 이름으로 뜰 것이다) 등으로 비슷한 것들이 몰려서 뜬다. 다른 것은 맨 끝에 위치한 임의의 문자열 정도이다. 그러면 당사자는 비슷한 와이파이 속에서 원하는 와이파이를 찾기 위해 설정창을 계속해서 헤맬 것이다.

 와이파이 이름을 찾거나 비밀번호를 입력할 때, 비슷한 모양의 글자가 많으면 헷갈리게 된다. 가령 대문자 I와 소문자 l, 대문자 B와 숫자 8, 대문자 O와 숫자 0 등이 서로 비슷하다. 만약 이 문자들을 다른 것으로 오해하게 되면 실수를 알아차릴 때까지 몇 번이고 비밀번호를 틀리게 된다. 이외에도 0이 5개가 연속으로 나온다면 0이 몇 개인지 세느라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와이파이를 복잡한 대로 사용하는 이유는 보안상의 이유일지도 모른다. 와이파이 이름을 쉽게 해놓으면 누구나 쉽게 접속할 수 있을 테니 해커의 침입이 더욱 쉬울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러나 공장 기본 설정값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올바른 보안대책으로 보이지는 않으며, 오히려 사용성과 장애인 접근성만 떨어트리는 행위이다. 와이파이를 어렵게 해도 다른 보안수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해커는 여전히 침입할 수 있으며, 결정적으로 해커가 다른 손님들처럼 음료를 사면 암호를 쉽게 취득할 수 있다.

해커의 침입을 막고 싶으면 와이파이 이름과 비밀번호를 자주 바꾸고, 보안성이 뛰어난 암호화 방식을 사용하고, 방화벽 등의 보안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공유기 펌웨어를 자주 업그레이드할 일이지, 발달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모바일 턱’을 설치할 일이 아니다.

  결국 와이파이 이름과 비밀번호를 공장제 난수(임의의 문자열) 그대로 두는 것은 귀찮음의 발로일 뿐이다. 보안에 큰 도움이 되지도 않고, 해커가 될 확률이 가장 낮은 집단인 발달장애인을 배제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는 다른 장애유형보다 더 큰 문제가 된다. 발달장애인은 기본 데이터 제공량이 낮은 저가 요금제를 사용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어떤 점포에서는 QR코드를 인쇄하여 붙여놓기도 한다. 휴대전화 카메라로 코드를 찍으면 와이파이 이름과 비밀번호를 입력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연결하는 편리한 기능이다. 없는 것보다 훨씬 나은 좋은 기능이지만, 노트북에는 QR코드 인식 기능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공공와이파이를 확충하는 것이다. 서울에는 이미 많은 지역에서 공공와이파이가 설치되어 있다. 공공와이파이는 개인이 설치한 와이파이보다 보안 위협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지자체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

매일 환경미화원이 거리를 청소하고 쓰레기를 수거하는데, 공공와이파이도 그 정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성별,연령, 계층, 질병, 장애유무와 장애유형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빠른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어야 온라인 시대의 정의(justic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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