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스펙트럼과 하이퍼월드' 책 표지. ©눌민

한국 사회가 중시하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역지사지易地思之(처지를 바꾸어 생각함)’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피장파장의 오류(상대방의 잘못으로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함)’일 것이다. 이 두 가지는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겸손의 미덕을 아는 것이 좋은 인간상이라고 가르치는 것만 같다.

그런 점에서 ‘이중공감문제(Double Empathy Problem)’은 정말 도발적인 가설이 아닐 수 없다. 자폐인은 비자폐인을 이해할 수 없고 그로 인해 커뮤니케이션 오류가 일어난다. 그러나 이러한 몰이해는 비자폐인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비자폐인도 자폐인의 감각과 세계를 모르지 않는가?

‘자폐 스펙트럼과 하이퍼월드’에 나오는 자폐 당사자들의 항변도 그것이다.

신경회로의 다수파 사람들 역시 자폐 스펙트럼 당사자들의 감지 방식, 대상을 보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니 서로 피장파장이 아니냐는 것이다(97쪽).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NT는 자폐인의 감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당사자가 정신상태를 아예 경험할 수 없다고 결론 내린다. 이것은 상자 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상자 안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오류이다(255쪽).

신경전형인과 비장애인의 눈에는 이러한 항변이 황당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논리 구조가 비슷하다고 해서 당사자가 제기하는 이중공감문제가 잘못된 가설인 것은 아니다.

‘피장파장의 오류’를 포털사이트 국어사전에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검색된다.

상대방의 잘못을 들추어 서로 낫고 못함이 없다고 주장하여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하는 오류.

그렇다. 논리적 오류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를 ‘상대방의 잘못을 들추’는 데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자폐인이 비자폐인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것은 뇌신경의 가지치기(pruning) 양상이 타인과 달라서(294쪽)이지, 당사자의 잘못이 아니다. 비자폐인이 자폐인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명제 역시 사실의 진술에 가깝지, 인신공격도 아니다.

이번에는 ‘착한 피장파장’(250-252쪽)을 보여주겠다. ‘세컨드라이프’의 자폐인 자조모임에서 한 회원이 반려동물의 죽음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자폐인 아바타들은 “어쩌면 좋니”, “힘들지 않니”, “그 기분 나도 알아”라며 위로한다.

충분한 위로를 받은 그 회원은 “앞으로는 아스퍼거(공식적으로는 사라졌지만 원문의 표기를 살린다)들이 동정하거나 공감할 줄 모른다는 말은 누구도 해서는 안 돼!”라는 결론을 내렸다.

비자폐인들이 슬픔에 처한 동료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위로하는 모습을 보이듯, ‘세컨드라이프’의 자폐인 역시 동료의 슬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자폐인끼리는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보이지 않는다는 이중공감문제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자폐인과 비자폐인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같다. 동료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위로하는 모습도 같다. 자폐인과 비자폐인의 피장파장이 오류에서 그칠 이유가 없다.

또 다른 피장파장의 예시로 자폐인들의 도발적인 ‘유머’(178쪽)가 있다.

신경정형발달증은 정신장애다.

1. 뇌신경의 장애로서 주 증상은 사회적인 평판에 극도로 신경을 쓰고, 자기가 우수하다는 망상, 사회적 순응에 대한 집착이다.

2. 비극적이게도 1만 명 중 9,624명에게 이 증상이 나타난다.

3. 현재 확립된 치료법이 없다.

나는 자폐와 정신장애를 중복으로 겪고 있는 당사자로서, 이러한 ‘유머’에 웃을 수도, 동의할 수도 없다. 이 부분을 이 책의 비판점으로 계속 꼽을 예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의 우악스러운 화법에는 전문가 집단과 부모 집단들이 자폐를 ‘치료해야 할 정신질환’으로 간주해온 것에 대한 피로감과 반발심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표현과 논리는 각각 다르지만 세 가지 예시와 이 책의 전체적인 흐름이 지적하고 있는 것은 결국 자폐인과 비자폐인 간의 의사소통 실패가 자폐인만의 잘못과 책임만으로 귀결되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자폐인과 비자폐인 모두에게 피장파장이 필요한 셈이다. 자폐인은 낙인감과 부끄러움에서 벗어나고, 비자폐인은 그동안의 자폐차별적인 태도를 성찰해야 할 것이다. 피장파장은 논리적 오류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다음 칼럼에서는 마지막으로 자폐스러운 아바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필자의 소회를 정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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